최근에 ‘경기 침체의 전조’로 불리는 현상이 40여 년 만에 가장 심해져서 많은 전문가들이 주목하고 있어요.
바로 장단기 채권의 금리 역전이에요. ‘장단기 채권 금리 역전’이란 말 그대로 장기 채권과 단기 채권의 금리가 역전됐다는 의미예요. 꽤 이례적인 현상이죠. 얼핏 들어선 이게 왜 경기 불황을 걱정할 근거가 되는지 알기 힘들지만, 한번 알아두면 경제 뉴스를 이해하는 데에 꽤 유용해요.
#1 채권? 시작부터 어려워..
채권은 정부나 기업이 빚을 내기 위해 발행하는 자산이에요. 나라가 발행하면 ‘국채’, 기업이 발행하면 ‘회사채’가 되죠. 쉽게 생각하면 돈을 빌리기 위해 발행하는 ‘차용증’이라고 볼 수 있어요.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차용증에 '이자를 언제 얼마나 지급할지, 원금은 언제까지 갚을지' 같은 조건들을 적어서 받게 될 텐데요, 이 내용들이 바로 채권의 금리와 만기를 의미해요. 만약 돈을 빌려준 조건이 '한 달에 한 번씩 연 5%에 해당하는 이자를 지급하다가 5년 후엔 원금 5000만원을 모두 갚는다'는 조건이었다면, 이 채권은 연 5% 금리의 5년 만기 채권이 되는 거예요.
은행에서 돈을 오랫동안 빌려 쓸수록 더 높은 이자율을 적용받는 게 대부분이에요. 반대로 우리가 돈을 은행에 맡길 때도 그렇잖아요. 1년 만기 적금을 들 때보다는 3년 만기로 가입할 때 더 높은 이자율을 적용받죠.
그래서 오랜 기간 돈을 빌릴 때 발행하는 장기 채권은 단기 채권보다 보통 금리가 높아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서로의 금리가 역전되는 현상은 발생하지 않죠. 하지만 아주 가끔 단기 채권 금리가 장기 채권보다 높아질 때가 있어요. 역전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간단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아요.
일단 시시각각 변하는 채권 금리는 신규 발행되는 채권의 금리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채권 금리는 돈을 빌릴 때 정하는 이자율이니까, 요즘처럼 각국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아요.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서 예금이나 대출이자가 모두 오르니 새로 발행되는 채권의 금리 수준도 높아지는 거죠.
단기 채권의 금리는 당시 기준금리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아무래도 2~3년 안에 돈을 갚기로 정하는 채권이니까 당장의 금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예요. 짧은 기간이다 보니 그동안의 금리 변화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기도 하고요.
장기 채권은 단기적인 경기 전망이나 당장의 기준금리 변화에 영향을 덜 받아요. 당장 금리가 조금 올랐다고 해도, 10년이나 20년 후까지 비슷한 상황이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장기 채권의 가격과 금리는 주로 장기적 경기 전망에 따라 움직여요.
그래서 금융 시장에서는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을 ‘탄광 속 카나리아’로 부르기도 해요. 과거 탄광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유해 가스가 발생하는 위험 상황을 감지하기 위해 카나리아를 곁에 두고 일했던 데서 유래한 표현이에요. 유해 가스에 민감한 조류인 카나리아가 쓰러지거나 하는 이상 행동을 보이면 광부들은 이걸 일종의 경고로 받아들였다고 해요.
#4 40년 전처럼 쓰러진 카나리아
이런 ‘카나리아의 경고’는 40년 만에 가장 강해진 상태예요. 전문가들의 주목을 받을만한 이례적 현상인 거죠. 미국 기준금리 인상의 여파로 꾸준히 상승세였던 미국 2년물 국채 금리는 어제(22일) 미국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p 인상)을 발표한 직후 4%를 넘어섰어요. 4%를 넘어선 건 세계 금융위기 발생 시기인 2007년 10월 이후 처음이에요.
② 단기 채권 금리는 기준금리 변화에 큰 영향을 받는 반면, 장기 채권 금리는 당장의 금리 변화보다는 경기 전망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있음. 경기 전망이 어두우면 장기 채권 금리가 약세를 보여 '금리 역전'이 일어나게 됨.
③ 어제(22일) 미국 기준금리가 0.75%p 더 인상되며 미국 2년물 국채와 10년물 국채 금리의 역전 폭은 0.5%p까지 커졌음. 미국이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겪었던 1980년대 초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함.
- 미국 ‘자이언트 스텝’에 입장 바꾼 한국은행
- 원·달러 환율 1400원도 돌파
- 푸틴, 30만 예비군 강제 동원
- 부동산 규제지역 대거 해제한 정부
- *더블딥
더블 딥(Double dip)이란 불황에 빠졌던 경기가 단기간에 회복세를 보이다 금세 다시 불황에 빠지는 W자형 이중 경기 침체를 뜻해요. 보통 경제 성장률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수치이면 ‘경기 침체’ 국면으로 보는데요. 더블 딥은 2개 분기 이상 연속으로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뒤 잠시 회복된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다시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세에 돌입한 상황을 뜻하는 거죠.
더블 딥은 자주 발생하는 현상은 아니에요. 미국에서는 1980년대 초 이후로 일어나지 않았을 정도로 드문 일이죠. 미국은 1970년대 후반에 물가 폭등 현상을 겪었는데요. 당시 아랍 지역의 산유국들이 석유 생산을 줄이고 가격을 올려 발생한 ‘석유 파동’도 영향을 미쳤어요.
이때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물가를 잡아보겠다며 1979년부터 기준금리를 대폭 올렸어요. 보통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시중의 금리(이자율)가 높아져 대출이나 투자·소비는 줄고, 예금이 늘어나거든요. 결국 시중에 풀린 돈이 줄게 되니 돈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물가 수준은 낮아지는 거죠.
하지만 기준금리를 올리면 대체로 경기는 위축되고, 주식 시장도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커져요. 석유 가격이 여전히 비싼 상태였다는 점도 악재였고요. 미국은 1980년 1월~7월에 경기 침체를 겪었어요.
이후 미국 경기는 1980년 말까지 잠시 회복되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그런데도 물가 상승세는 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죠. 연준은 확실하게 물가를 잡아보겠다며 다시 기준금리를 올렸고, 미국은 1981년부터 그다음 해인 1982년까지 다시 경기 침체에 빠져서 더블 딥을 겪게 됐어요.
최근 더블 딥 현상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요. 2020년 초에 여러 국가가 코로나19 유행으로 경기 침체를 겪었잖아요. 이후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인하 등의 정책을 펼치며 경기가 살아나는 듯했고요. 그런데 요즘 물가가 너무 올라서 기준금리를 빠르게 인상하는 중앙은행들이 많아지다 보니, 또다시 경기침체가 찾아와 더블 딥 현상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전망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 거예요.
디그(dig)
dig@mk.co.kr
서울 중구 퇴계로 190 매경미디어센터
'뉴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2.09.26 [매경시평] 환율 상승의 명암과 통화정책 (0) | 2022.09.26 |
---|---|
2022.09.25 남들 다 하길래 따라했다가…거품 70% 꺼져 난리인 이것[더테크웨이브] (0) | 2022.09.25 |
22.09.22 연준 '매파' FOMC 해석에 뉴욕증시 급락…달러화 1% 넘게 급등 (0) | 2022.09.22 |
22.09.21 "60세 이상도 국민연금 계속 내야"…OECD 또 충고 (0) | 2022.09.21 |
22.09.20 신한 우리은행, 대출금리 내리고 예금금리 올렸다…이자장사 경고 먹혔네 (0) | 2022.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