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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22.09.23 40년 전처럼, 카나리아가 쓰러졌다

by NIMMIN 2022. 9. 23.

최근에 ‘경기 침체의 전조’로 불리는 현상이 40여 년 만에 가장 심해져서 많은 전문가들이 주목하고 있어요.

 

바로 장단기 채권의 금리 역전이에요. ‘장단기 채권 금리 역전’이란 말 그대로 장기 채권과 단기 채권의 금리가 역전됐다는 의미예요. 꽤 이례적인 현상이죠. 얼핏 들어선 이게 왜 경기 불황을 걱정할 근거가 되는지 알기 힘들지만, 한번 알아두면 경제 뉴스를 이해하는 데에 꽤 유용해요.

 

#1 채권? 시작부터 어려워..

 

채권은 정부나 기업이 빚을 내기 위해 발행하는 자산이에요. 나라가 발행하면 ‘국채’, 기업이 발행하면 ‘회사채’가 되죠. 쉽게 생각하면 돈을 빌리기 위해 발행하는 ‘차용증’이라고 볼 수 있어요.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차용증에 '이자를 언제 얼마나 지급할지, 원금은 언제까지 갚을지' 같은 조건들을 적어서 받게 될 텐데요, 이 내용들이 바로 채권의 금리와 만기를 의미해요. 만약 돈을 빌려준 조건이 '한 달에 한 번씩 연 5%에 해당하는 이자를 지급하다가 5년 후엔 원금 5000만원을 모두 갚는다'는 조건이었다면, 이 채권은 연 5% 금리의 5년 만기 채권이 되는 거예요.

투자자 입장에선 이런 채권을 돈 주고 사면 연 5%의 이자 수익을 올릴 수 있어요. 그래서 채권은 주식이나 펀드처럼 ‘투자 상품’이기도 해요. 주식보다는 변동 폭이 작지만 사들였던 채권의 가치가 계속 변화하고, 시장에서 주식처럼 사고팔 수도 있죠.
 
#2 장기 채권은 뭐고 단기 채권은 뭐야?

 

장단기 금리 역전은 보통 국채 금리를 두고 이야기할 때가 많아요. 국채는 나라가 원금과 이자 지급을 보장하기 때문에, 회사에서 발행하는 ‘회사채’ 같은 다른 채권들보다 대체로 안정성이 높거든요. 특히 미국이 발행한 국채는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꼽혀서 일종의 ‘기준’처럼 여겨져요.

은행에서 돈을 오랫동안 빌려 쓸수록 더 높은 이자율을 적용받는 게 대부분이에요. 반대로 우리가 돈을 은행에 맡길 때도 그렇잖아요. 1년 만기 적금을 들 때보다는 3년 만기로 가입할 때 더 높은 이자율을 적용받죠.

돈을 빌려줄 땐 오랫동안 빌려줄수록 각종 변수가 등장할 위험이 있고, 반대로 빌려 쓰는 입장에선 장기간 빌리는 게 안정적으로 자금을 활용할 수 있어 유용하기 때문이에요.
 
왜 금리가 역전되는 건데?
그래서 오랜 기간 돈을 빌릴 때 발행하는 장기 채권은 단기 채권보다 보통 금리가 높아요.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서로의 금리가 역전되는 현상은 발생하지 않죠. 하지만 아주 가끔 단기 채권 금리가 장기 채권보다 높아질 때가 있어요. 역전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간단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아요.
 
✅채권 금리는 ‘새로 발행하는 금리’

일단 시시각각 변하는 채권 금리는 신규 발행되는 채권의 금리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채권 금리는 돈을 빌릴 때 정하는 이자율이니까, 요즘처럼 각국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아요.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서 예금이나 대출이자가 모두 오르니 새로 발행되는 채권의 금리 수준도 높아지는 거죠.
 
이러면 기존에 발행했던 채권들은 어떨까요? 함께 금리가 올라갈까요? 아니에요. 이미 몇 년 동안 몇 퍼센트의 이자율을 적용하기로 약속했잖아요. 그래서 금리는 그대로예요. ‘새롭게 발행되는 채권’의 금리가 높아지는 거죠.
 
✅기준금리 영향 크게 받는 단기 채권

단기 채권의 금리는 당시 기준금리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아무래도 2~3년 안에 돈을 갚기로 정하는 채권이니까 당장의 금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예요. 짧은 기간이다 보니 그동안의 금리 변화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기도 하고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올해 들어서만 기준금리를 3%p 인상하는 등 빠르게 금리를 올리고 있는데요, 이 영향을 받아서 단기 채권 금리도 함께 상승했어요. 대표적인 단기 채권인 ‘미국 2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 3월 초엔 1.3% 수준이었지만, 약 6개월 만인 어제(22일) 기준으로는 4.1%를 넘어섰어요. 기준금리의 영향으로 단기 채권 금리가 급등한 거예요.
 
✅경기 전망에 큰 영향 받는 장기 채권

장기 채권은 단기적인 경기 전망이나 당장의 기준금리 변화에 영향을 덜 받아요. 당장 금리가 조금 올랐다고 해도, 10년이나 20년 후까지 비슷한 상황이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장기 채권의 가격과 금리는 주로 장기적 경기 전망에 따라 움직여요.
 
길게 봐서 경제 상황이 좋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면 장기 채권의 금리는 올라요. 경기 호황이 예상되면 적극적으로 장기 투자에 나서기 위한 자금 수요가 늘어나고, 당연히 돈을 오래 빌릴 때 부담해야 하는 이자율도 높아지는 거죠. 빌리고 싶은 사람이 많은 상황이니까요.
 
경기 전망이 어두울 땐 거꾸로 뒤집어 생각하면 돼요. 장기 자금 수요가 부족하니 장기 채권 금리는 약세를 보이게 되죠. 장기 채권 금리가 하락하거나 단기 채권보다 상대적으로 덜 오르면 경기 부진을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인 거예요. 이런 경우 단기 채권과의 금리 차이가 줄어들고, 더 심해지면 역전까지 발생하게 돼요.
 
#3 역전될 때마다 경제 위기
 
전문가들이 장단기 채권 금리의 변화에 주목하는 건 경제 상황을 전망할 때 도움이 되는 지표 중 하나이기 때문이에요. 전문가들은 그중에서도 대표적 장단기 채권인 미국 10년물 국채와 2년물 국채의 금리 차이를 꾸준히 지켜봐요. 실제로 과거에 ‘장단기 금리 역전’이라는 특이한 현상이 발생한 후 경기 침체기를 맞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1977년 이후 지난해까지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은 7회쯤 일어났고, 이 중 5회는 실제 경기 침체로 이어졌어요.

그래서 금융 시장에서는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을 ‘탄광 속 카나리아’로 부르기도 해요. 과거 탄광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유해 가스가 발생하는 위험 상황을 감지하기 위해 카나리아를 곁에 두고 일했던 데서 유래한 표현이에요. 유해 가스에 민감한 조류인 카나리아가 쓰러지거나 하는 이상 행동을 보이면 광부들은 이걸 일종의 경고로 받아들였다고 해요.

 

#4 40년 전처럼 쓰러진 카나리아


이런 ‘카나리아의 경고’는 40년 만에 가장 강해진 상태예요. 전문가들의 주목을 받을만한 이례적 현상인 거죠. 미국 기준금리 인상의 여파로 꾸준히 상승세였던 미국 2년물 국채 금리는 어제(22일) 미국 연준이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p 인상)을 발표한 직후 4%를 넘어섰어요. 4%를 넘어선 건 세계 금융위기 발생 시기인 2007년 10월 이후 처음이에요.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도 최근 상승해 11년 만에 3.5%를 넘어섰지만, 2년물 국채의 급등세를 따라가지는 못했어요. 2년물 단기 국채가 10년물 장기 국채보다 더 높아지는 ‘역전 현상’이 더욱 심해진 거예요.
어제(22일) 기준 미국 2년물 국채와 10년물 국채 금리는 0.5%p 넘게 벌어졌어요. 두 채권의 금리 역전 폭이 0.5%p 이상 벌어진 건 미국이 극심한 W자형 경기 침체인 *더블 딥을 겪었던 1981년 이후 처음이에요. 1980년대 초는 미국이 아주 심한 경기 침체를 겪었던 시기인데, 다시 말하면 시장 참가자들이 그때만큼 심각한 침체를 우려하고 있다는 의미일 수 있는 거죠.
이번에도 카나리아의 경고가 들어맞을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이런 금리 역전 현상이 경기 침체의 명확한 신호라고 보는 경제 전문가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 3줄 요약 ★
①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보다 2년물 국채 금리가 높아지는 '장단기 금리 역전'이 심화하고 있음. 이례적인 일인 데다, 이런 현상은 경기 침체의 전조로 여겨지기 때문에 시장의 주목도 또한 높아지는 분위기.

② 단기 채권 금리는 기준금리 변화에 큰 영향을 받는 반면, 장기 채권 금리는 당장의 금리 변화보다는 경기 전망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있음. 경기 전망이 어두우면 장기 채권 금리가 약세를 보여 '금리 역전'이 일어나게 됨.

③ 어제(22일) 미국 기준금리가 0.75%p 더 인상되며 미국 2년물 국채와 10년물 국채 금리의 역전 폭은 0.5%p까지 커졌음. 미국이 극심한 경기 침체를 겪었던 1980년대 초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함.


  •  미국 ‘자이언트 스텝’에 입장 바꾼 한국은행
  • 원·달러 환율 1400원도 돌파
  • 푸틴, 30만 예비군 강제 동원
  • 부동산 규제지역 대거 해제한 정부
  • *더블딥

더블 딥(Double dip)이란 불황에 빠졌던 경기가 단기간에 회복세를 보이다 금세 다시 불황에 빠지는 W자형 이중 경기 침체를 뜻해요. 보통 경제 성장률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수치이면 ‘경기 침체’ 국면으로 보는데요. 더블 딥은 2개 분기 이상 연속으로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한 뒤 잠시 회복된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다시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세에 돌입한 상황을 뜻하는 거죠.

 

더블 딥은 자주 발생하는 현상은 아니에요. 미국에서는 1980년대 초 이후로 일어나지 않았을 정도로 드문 일이죠. 미국은 1970년대 후반에 물가 폭등 현상을 겪었는데요. 당시 아랍 지역의 산유국들이 석유 생산을 줄이고 가격을 올려 발생한 ‘석유 파동’도 영향을 미쳤어요.

 

이때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물가를 잡아보겠다며 1979년부터 기준금리를 대폭 올렸어요. 보통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시중의 금리(이자율)가 높아져 대출이나 투자·소비는 줄고, 예금이 늘어나거든요. 결국 시중에 풀린 돈이 줄게 되니 돈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물가 수준은 낮아지는 거죠.

 

하지만 기준금리를 올리면 대체로 경기는 위축되고, 주식 시장도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커져요. 석유 가격이 여전히 비싼 상태였다는 점도 악재였고요. 미국은 1980년 1월~7월에 경기 침체를 겪었어요.

 

이후 미국 경기는 1980년 말까지 잠시 회복되는 모습을 보였는데요. 그런데도 물가 상승세는 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죠. 연준은 확실하게 물가를 잡아보겠다며 다시 기준금리를 올렸고, 미국은 1981년부터 그다음 해인 1982년까지 다시 경기 침체에 빠져서 더블 딥을 겪게 됐어요.

 

최근 더블 딥 현상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요. 2020년 초에 여러 국가가 코로나19 유행으로 경기 침체를 겪었잖아요. 이후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인하 등의 정책을 펼치며 경기가 살아나는 듯했고요. 그런데 요즘 물가가 너무 올라서 기준금리를 빠르게 인상하는 중앙은행들이 많아지다 보니, 또다시 경기침체가 찾아와 더블 딥 현상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전망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 거예요.

 

디그(d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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